Leo Jeong
취미를 찾아 나서는 길

처음 슈퍼볼을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미식축구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기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어느 날인가 기숙사에 누워 여느 때처럼 놀고 있는데, 문득 슈퍼볼 경기가 보고 싶어 졌다. 유튜브에 NFL 을 치고 몇가지 영상을 보았다. 그때가 16년도 였으니 (수험생이었는데...) Denver Broncos 와 Seattle Seahawks 의 XLVIII 슈퍼볼이었다. 페이튼 매닝의 멋진 패스들을 보면서 나는 미식축구란 참 재밌는 스포츠라고 생각했고, 그 길로 몇가지 경기 영상들을 좀 더 찾아 보았다. 다양한 전략, 개인기, 무시무시한 선수들의 운동 능력까지, NFL 은 마치 작은 전쟁같았다.

NFL

우습게도, 다른 취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오래지 않아 미식축구를 잊어버렸고, 또 새로운 취미를 찾아다녔다. 아마도 대학교 1, 2학년에는 영화에 심취했었던 것 같다. '나는 영화를 좋아해' 라는 타이틀에 집착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영화를 보는 것이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예전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중학교 때 나왔던 나만의 영화 만들기 수행평가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밑도 끝도 없는 좀비물을 만들어놓고는 교실에서 그걸 틀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그래도 촬영 / 편집을 모두 했던 그때만큼 가슴 뛰는 일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어쩌면 나는 정말 영화계로 갔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ㅋㅋㅋ

최근에는 일이 바빠서 이런저런 취미들을 갖지 못했다. 좋아하는 영화도 안 본지 꽤 됐고, 넷플릭스도 도중에 끊어버렸다. 집에오면 인터넷이나 좀 보다 잠드는 게 끝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기껏 그림 연습 하겠다고 사놓은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은 용처를 잃고 그냥 유튜브 보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귀찮은 나머지 애플 펜슬은 그냥 떼어놓고 쓰기도 한다. 운동도 한참을 안했다. 학교 다닐 때 했던 복싱도 이제는 하지 않으니 복싱 장갑은 그냥 방치되어 있다. 아마 저 옆에 보이는 짐 상자 안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테지. 사이드 프로젝트는 말 할 것도 없다. 한 두달 전 야심차게 기획해 보았던 파이프라인 UI 라이브러리는 결국 repo 를 날려버렸다. 뭘 어떻게 세팅 했었는지도 기억이 안나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의 취미를 날려 보내고 나니, 이제는 시간이 남아도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일정과 일정 사이가 텅 비었을 때 할 만한 것이라곤 그냥 정처없이 걷거나 (이마저도 앉을 곳이 없어서 걷는 것에 가깝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나무위키를 돌아다니는 것 뿐이다. 주말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인터넷만 하다 낮잠에 빠지는 것이 다였다.

이대로는 안돼.

NFL 을 다시 켜고,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영화를 다시 보고, 넷플릭스 드라마도 다시 보고. 새롭던 새롭지 않던 하나 정도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울 때마다 바쁜 사람들을 붙잡고 구구절절 이야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하소연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한계가 있다. 때로는 스스로 공허함을 달랠 수 있어야 한다. 건전하고 즐거운 취미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1. 미식축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미 시즌이 끝난지는 한참 되었고 슈퍼볼 마저도 몇 주 전에 지나가 버렸지만, 어차피 아직 응원하는 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멋진 플레이를 보는 것 자체가 재밌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다. 학교 다닐 때는 프리미어 리그 보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치킨 먹으며 축구 보는게 참 즐거워 보였는데, 나도 미식축구 보는 친구들과 슈퍼볼 보면서 재밌게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태원은 슈퍼볼 시즌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1.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드라마를 안 본다. 나는 단순하고 한 번에 끝을 보는 것들을 좋아하는데 (영화 등), 드라마는 꾸준히 끈기를 갖고 봐줘야 하며 다음 화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내게는 거의 고문에 가까운 미디어 형식이었다. 같은 원리로 웹툰도 정주행이 아니면 잘 안 봤다. 치즈인더트랩도 완결이 몇년 지나고 재연재가 끝나갈 무렵에 정주행으로 본 사람이다, 내가. 마찬가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도 처음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리뷰 영상 몇개를 접하고 재밌어 보이는 것들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특히 요즘은 종이의 집을 매우 재밌게 보고 있다. 플롯에 뭔가 중심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짬짬히 5분씩(...) 끊어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즌 3가 나온다니까, 그 전까지 천천히 보다가 시즌 3가 끝나면 정주행을 하려고 한다.

여튼, 취미를 다시 가져보려고 다방면으로 찾아보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외출과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야외활동은 미래가 매우 어둡지만, 언젠가는 운동도 해볼 생각이다. 우한 폐렴 사태가 잠잠해진다면 말이지...